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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일본 땅에 백제 황제가 있어 칭제건원 하였다.

Jinyoung Ssangkum Ryu 2013. 11. 18. 20:16

 

 

일본 땅에 백제 황제가 있어 칭제건원 하였다.

 

1.

 

일본 규슈의 백제인은 왜국왕이라며 황제를 칭하고 연호를 세웠고, 당시 일본 천황은 왜국 백제인의 연호를 사용했다.

 

고구려 연호는 광개토왕의 영락(永樂) 연호가 있고, 신라는 [삼국사기]에 법흥왕이 세운 건원(建元)등등이 기록되어 있는데, 백제는 [삼국유사]에서 사반왕의 연호 낙초(樂初)가 있었고, 칠지도의 근초고왕 연호 태화(泰和)가 있었다. 이중 신라는 당나라의 연호를 사용하면서 자체 연호를 중지했고, 백제도 자체 연호를 중지하여서 무령왕 고분과 위덕왕 유물에 연호가 없다.

 

일본은 [일본서기]를 통해서 효덕천황이 645년에 세운 대화(大化) 연호가 최초라는 것이 정설이었다.

그러나 1320년경 일본에서 저술된 이중력(二中曆)이라는 책에 516년부터 700년까지 일본 전국에서 사용된 30여개의 연호를 기록해 놓았다. 이는 조선 학자 신숙주의 [해동제국기]에도 비슷하게 기록되었고 다만 522년부터인 것이 다르다. 그 이후 비슷한 내용의 여러 책이 전해오고 있다.

 

최근에 일본 전국 사찰 등에 산재한 고대 연호 사용 기록을 모아서 522년부터 700년까지 사용된 연호의 기록 증거들이 속속 밝혀지면서 [일본서기]의 천황 일본국이 아닌 규슈 지방에 구주왕조가 존재했다고 인정하는 것이 크게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실제는 백제왕자가 구주 땅에서 왜국왕을 하면서 스스로 천자를 칭하고 칭제건원했다는 명백한 사실이다.

물론 일본의 학자들은 구주왕조가 백제인이 아닐까 의심하면서도 임나일본부를 줄기차게 주장하고, 일본 연호는 계체천황 때 528년 구주의 후쿠오카에서 반란을 했던 축자군왕 반정(磐井)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몰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는 일본 고대사에 대한 일본인들의 몰이해에서 비롯된다.

 

 

2. 구다라 백제 성립 배경

 

송나라에서 책명받은 왜5왕이 있는데 그중 뒤에 3분은 왜제왕(倭濟王), 제왕의 동생 왜흥왕(倭興王), 제왕의 아들 왜무왕(倭武王)이다.

이 세 분의 왜왕은 [일본서기]와 맞지 않는다. 왜무왕을 웅략천황이라고 주장해왔지만 왜무왕은 502년까지 왜왕으로 양나라의 책봉을 받았고, 웅략천황은 고분 기록에서 479년에 죽었다.

 

478년 왜무왕이 송나라에 보낸 국서에 의하면

왜무왕의 부왕이 직접 전장을 누비면서 왜제왕(臣亡考 濟)이며, 이전부터 동쪽으로는 일본 55국을 치고, 서쪽으로는 중국 66(하북성과 산동성의 백제군)을 치고, 해북(요서, 요동, 낙랑, 고구려)95국을 쳤는데 (自昔祖禰躬擐甲冑跋涉山川不遑寧處東征毛人五十五國西服衆夷六十六國渡平海北九十五國)

무도한 고구려에 의해 아버지와 형들의 초상(奄喪 父兄)을 엄중하게 입었고, 그 부형의 원한을 갚고 싶다고 하였다.(申父兄之志)

이는 475년 고구려 장수왕이 백제 개로왕을 쳐서 위례한성을 함락하고 개로왕과 왕자들을 몰살한 사건을 가리킨다.

같은 국서에서 백제왕을 겸한 책명을 송나라 황제에게 요구한 바가 있는데, 송나라에서는 모도왕을 백제왕으로 인정했다. 모도왕은 개로왕의 동생이라고 [일본서기]에 나와 있고 무령왕은 개로왕의 아들이므로 백제왕 계승의 정통성을 주장한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모도왕의 백제 군사들이 진나라 말기부터 중국 양자강 동안 등에 들어가 있었기에 송나라는 가까운 백제 모도왕을 백제왕으로 인정한 것이다.

 

무령왕은 [일본서기]에서 개로왕의 부인이 개로왕 동생 곤지와 일본에 가서 출산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속명이 사마(斯麻)였으며, [일본서기]의 기록은 30년전 무령왕릉의 발굴로 모두 사실로 확인되었다.

따라서 왜제왕은 개로왕, 왜흥왕은 곤지왕(문주왕 때 상좌평을 잠시 했다.), 왜무왕은 무령왕인 것이 확실하다.

이제 더 이상 일본이 사실을 외면하고 거짓 고대사를 자국민에게 강요하면 안된다.

 

방증으로 백제 곤지왕을 모시는 일본 신사가 오오사카에 남아 있다.

http://www.oct.zaq.ne.jp/yasuo26/asukabejinjya.html

올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서 한국식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飛鳥部()神社 / 아스카베신사

所在地 羽曳野市飛鳥河內國安宿郡소재지; 하비키시 아스카

祭神 百濟王弟こん伎王, 古代のこの安宿郡賀美?제신; 백제왕 동생 곤지왕

[신찬성씨록(新撰姓氏錄)에서는 이들의 후예를 백제 동성대왕의 후손이라고 기록했다.

飛鳥部造百濟末多王後也/ 비조부조는 백제 동성왕(곤지왕 아들)의 후손이다.

일본 청령천황의 황릉은 오오사카 하비키시 서포 大阪府羽曳野市西浦 에 있다.

곤지대왕을 모시는 아스카베 신사도 역시 하비키시 아스카라는 곳에 있다.

 

무령왕이 규슈 지방에서 왜무왕을 지내다가 동성왕의 죽음으로 인해 백제무령왕으로 귀환한다. 그때 오오사카 대화국에서 무열천황이 일어나 빈집털이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규슈에는 무령왕의 영토가 남아 있었다. 청령천황의 이름이 백발무광국압치일본근자(白髮武廣國押稚日本根子)인데 이를 천황이 되기전 영토로 보면 후쿠오카의 향치궁(香稚宮)이고, 고대 중국식의 태재부(太宰部)도 있었다.

 

 

3. 규슈 팔번왕의 칭제건원

 

무령왕은 대화조정의 무열왕 때, 규슈 무령왕 영토에 마나(麻那)를 보냈다가 동생인 사아왕(斯阿王)을 보냈다. 이는 [일본서기]에 나온다.

507년 무령왕의 지시인지 대화왕조의 무열천황이 죽고, 계체천황이 즉위했는데 계체는 무령왕의 이복형이다. 당시 기록은 계체인왕(人王)이다. 천황(天皇)8세기에 만들어진 호칭이다.

 

522년 규슈에서 칭제건원이 시작되었다.

1914년 일본에서 만들어진 고사류원(古事類苑)이라는 책중에 세시부를 보면 연호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결론이 있다.

고사류원/ 세시부/ 습국위체고 襲國僞僭考

계체천황16, 무왕년 선기(善記)라는 연호를 세웠다. 이 구주연호는 선기부터 대장까지 177년간 사용되었고, [여기기사초] [해동제국기] [여시원연대기] 등등에 실려 있다.

繼體天皇十六年武王年善記といふ是九州年號○○○○のはじめなり年號 けだし善記より大長にいたりておよそ一百七十七年其間年號連綿たり麗氣記私抄また海東諸國記などにもこれを今伊豫國温泉銘にも如是院年代記にも朱書してせりしかれども諸書載るところ異同多あはせしるして參考ふることのご

 

윗글중 무왕은 왜무왕을 의미한다. 왜무왕은 502년 이후에 역사 기록이 없는데 왜무왕으로 잠정 추정한 것이다.

그러면 이제 연호 선기가 세워진 고대 기록을 보자.

 

번호

내용

탑재사료

성립연대

원전原典성립연대

전승 장소(一部旧地名)

1

人王二十七代継体天皇御宇善記元壬寅歳法雲宝唱来朝之時持来大戸道之宝殿籠置

防長寺社由来1716

 

山口県熊手郡熊手町呼坂熊手神社

2

石躰権現顕玉フハ・・・日本年号始善記八幡御示現豊前国宇佐郡皇子嶺場

長門二宮忌宮神社文書

二宮御縁起1617

山口県下関市長府

3

善紀元年壬寅従大唐八幡大菩薩日本還給善紀元年王刀壬寅従大唐八幡大菩薩渡日本

八幡宇佐宮御託宣集1313

香椎宮縁起

福岡県福岡市香椎宮

4

善記元年壬寅自大唐渡御住所求玉

善記元年壬寅日本人王廿七代継体

神道集正八幡宮事

八幡由来記

大分県宇佐市宇佐八幡

5

善記癸卯南呂一五卯一点

群馬県史料集八縁起編

角淵八幡宮縁起1615

群馬県佐波郡角淵八幡神社

6

善記年創建(神社銘鑑)継体天皇神亀年中勅願処(郷村史略)

郷村史略明治一八年

 

秋田県鹿角市八幡平大日霊貴神社(大日堂)

7

継体帝善喜年中 此時年号ナシ

郷村史略明治一八年

 

青森県南部小豆澤大日堂

8

善喜弐年癸卯本宮立十社大明神

えとのす 三二号

十社大明神記 1189

宮崎県高千穂八十八社総社

9

舊鰐口二噐其一銘曰善喜二年三月日鰐口銘文

仙台金石志巻之十二 一八五七

封内名蹟志巻十五一七四一

宮城県栗原郡二迫屋敷村八所権現

10

一目神社・・・継体帝善記四年十一月四日高天山神主祭之

肥後国誌1706

 

熊本県山鹿郡中村久原村目一箇男神社

11

善光寺・・・継体天皇御宇善記四年本尊百済ヨリ来着

諏訪史料叢書第二巻

諏訪大明神絵詞1356

長野県諏訪市諏訪大社

12

善紀元年壬寅ヨリ宝亀元年マデ

大日本仏教全書

鞍馬蓋寺縁起

京都府京都市左京区鞍馬

13

善化

 

海東諸国記 1471

李氏朝鮮

14

善記

群書類従

如是院年代記

 

 

14개의 선기 연호 사용 기록 중에서 2, 3, 4번이 처음 연호를 세울 때 기록이라 의미가 있다.

2. 石躰権現顕玉フハ・・・日本年号始善記[八幡御]示現豊前国宇佐郡皇子嶺場

석가모니신은...일본연호의 시작은 선기며 팔번왕이 풍전국 우좌군 황자령에 나타났다.

3-1 善紀元年壬寅従大唐[八幡大菩薩]日本還給

선기원년 임인(522)에 대당으로부터 팔번대보살이 일본에 되돌아왔다.

3-2 善紀元年王刀壬寅従大唐八幡大菩薩渡日本

선기원년 왕도王刀 임인(522)에 대당팔번대보살이 일본에 건너왔다.

4-1 善記元年壬寅自大唐渡御住所求玉

선기원년임인(522), 대당으로부터 건너와 왕이 살 곳과 옥을 구했다.

4-2 善記元年壬寅日本人王廿七代継体

선기원년임인년(522)은 일본 인왕27세 계체다.

 

팔번대보살로 인해서 일본에는 수만개의 팔번신사가 존재하게 되었다.

팔번신은 무신(武神)으로 숭상되며 일본의 대내외 전쟁 때마다 수호신으로 추앙받고 가미가제(神風) 전투기 자살특공대도 끌어안고 갔다.

작금에 수많은 팔번신사에서 팔번신은 응신천황과 같은 인물로 취급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팔번신과 응신천황이 잘못 엮인 것은 수백년 뒤에 일어난 일이다.

팔번八幡은 지금 하치망(はちまん)으로 더 많이 발음한다. 그러나 [속일본기(続日本紀)][일본영이기日本霊異記] 등에는 야하타(ヤハタ)”로 읽으라고 했다.

그러던 것이 불교 융성으로 인해서 지금은 거의 다 하치망(ハチマン)으로 읽혀지게 되었다.

()을 범()으로 더 신격화하는 것이다.

 

일본 동대사 팔번신 

 

그러나 저 팔번 야하타가 진짜로 뭘 의미하는지는 아래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다. 8개의 깃발이다.

팔번을 또 광번팔번(廣幡八幡)이라고도 했다. 즉 장수의 깃발이다.

 

암수현(巖手縣) 조지봉 팔번신사의 팔번신

 

위의 2번 설명에 팔번신이 대당에서 일본으로 되돌아왔다고 했는데 이를 두고 522년에 응신천황 혼령이 한반도에서 되돌아왔다고도 주장하지만 응신천황 혼령이 칭제건원하는 황제가 될 수는 없다.

참고로 당()은 중국땅, 혹은 한반도를 의미한다고 일본어사전에서 말한다.

 

522년 백제 무령왕은 호산(狐山)으로 사냥을 가셨는데, 일본에 갔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가 일본 규슈에서 받았던 송나라의 안동대장군기, 양나라의 정동대장군기 등을 가져간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팔번 깃발의 일본 규슈 환국이 된다.

중국에서 활동했던 수많은 백제 장수들, 특히 북위군을 물리쳤던 역전의 장수들이 각기 넓은 깃발(廣幡)을 앞세워서 무령왕을 수행하여 따라갔을 수도 있다.

 

이후로 야하타(八幡)규슈 천자의 호칭이 된다.

왜국왕이 600년부터 수나라와 교류하면서 보낸 국서를 보면 천자를 칭했다.

607년에 수나라에 국서를 보내어 자신은 해뜨는 나라의 천자이고 수나라 황제는 해지는 나라의 천자라고 칭했다. (日出處天子 致書 日沒處天子 無恙)

이 왜국 천자는 일본의 당시 천황이었던 추고천황이 아니니 추고천황의 호칭은 미고토()였고, 천황이라는 호칭은 8세기에 추증된 것이다.

또한 [구당서] [신당서]에는 왜국과 왜국의 별종인 일본두 나라가 각각 기록되었다.

규슈 왜국에는 아마 다리시북고(阿每 多利思北孤 = -帶日子)라는 이름의 왜왕이 있었고, 는 아배계미阿輩鷄彌라고 불렀다.

백제왕은 백제에서 어라하라고 불렀던 것처럼 왜국은 천자 아배계미(阿輩鷄彌)라고 불렀는데, 이 글자는 바로 아하타(あハタ)(==)로 읽어야 되는 것이다.

서기 522팔번왕(八幡王)야하타미(ヤハタみ)600년의 천자가 아하타미(あハタ)이니 같은 것이다. 즉 결론은 규슈 왜국의 천자는 팔번왕 야하타미로 불렸다.

 

4.

그러면 522년 규슈 우좌시로 귀한해서 칭제건원 했던 팔번왕이 왜 하필 꼭 백제 무령왕이냐고 하면 사실 아쉽지만 심증과 방증밖에 없다. 그러나 체계적이 과학적인 추론인 것이다.

오로지 무령왕이 왜무왕이었기에 팔번왕의 규슈 귀환이 설명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좀더 나가서 611년 정거(定居) 연호를 보자. 정거연호는 무려 23회 기록되었는데 가장 의미있는 것은 다음 기록들이다.

 

1. 611년 신미년은 추고천왕 19년이고 백제국 정거 원년이다.

于時推古天皇一九年辛未暦なり百済国定居元年とかや

여기 분명하게 구주연호 정거는 백제 연호라고 못박았다. 그런데 한반도에서는 저 연호를 사용하지 않았다. 규슈에 있던 구따라(일본은 백제를 하꾸자이라고 읽지 않고 구따라라고 읽는다.)를 비롯해서 일본 전역에서 사용하던 것이다. 한반도의 백제가 저 연호를 사용했으면 구다라 백제의 속국 형태가 된다. 물론 일본은 구다라 백제의 속국이었다.

 

2. 추고천왕때인 백제국 정거원년 신미년에 임성태자가 일본 대화조정으로 건너왔다.

推古女帝御宇 百済国定居元辛未年 琳聖太子 我朝ヒテ

추고천왕때인 백제국 정거원년 신미년에 임성태자가 일본 대화조정으로 건너왔다.

그러나 망명한 것은 아니다.

 

3. 본 절은...백제국...임성태자... 천황이 되어 좌파군대내현(야마구치 현이다.)에 황거(황궁)를 건설하고 정거왕이라고 불렀다.

当寺は・・・百済国・・・琳聖太子・・・天皇佐波郡大内県皇居建而定居王

백제국 임성태자가 야마구치현에 들어와 황성을 짓고 연호를 세우고 정거왕이라고 했다는 기록이다. 이 임성태자의 후예가 대내씨(大內氏)로 이어진다.

즉 규슈 백제가 규슈에서 본토로 이주해 들어간 것을 알 수 있다.

 

4.성덕태자 40세 정거2년 백제국이 건너왔다. 聖徳太子四十歳定居二年壬申百済国渡

규슈 백제국이 통째로 본주 야마구치현에 건너갔다는 뜻이다. 이는 천도거나 분국 기사이다. 

5.성덕태자치세 정거2년 임신년에 백제국........임성태자는 혹은 왕이라고 한다. 聖徳太子治世定居弐年壬申歳百済国・・・琳聖太子日域有御来朝

 

, 여기서 야마구치현에 남겨진 임성태자 아니 천자 임성황제의 유물을 보자.

 

 

임성황제가 사용한 철모의 가운데에 금으로 왕()자를 새겼고 모자 좌우 귀에는 각각 태양()과 달()을 금으로 조각해서 넣었다.

대내씨 후손들이 조선 정종대왕님께 백제 성명왕의 3째 아들이었다고 주장했던 임성태자가 사실은 일본 본토에서 정거 연호를 세운 황제였다는 사실이 저 유물에서 증거된다.

 

추가적으로 577년의 현칭 연호를 본다.

6. 연호 현칭 정유년에 당백제국....백제임중황제중임성가지태자.

季号賢称丁酉とかやの唐百済国中略百済琳中皇帝中林聖家之太子

577년에 구다라 백제 임중황제에 대한 언급이 남아있다.

 

5.

1. 규슈에는 왜국왕이라고 하는 천자가 있었고,

2. 522년부터 야하타 팔번왕이 천자의 호칭이었고,

3. 당시 규슈 연호의 주인이 백제국이었고(, 규슈의 구다라 백제다.) 임중황제, 임성황제 등 백제황제의 기록과 유물이 남아 있다.

4. 522년 일본 우좌팔번궁에 수많은 깃발을 가지고 귀환해서 처음 칭제건원한 규슈 황제는, 전에 왜무왕을 지냈던 백제 무령왕이라고 결론내는 것이 역사과학에 맞는 것이다.

기타 추가적인 보충 사항으로서 일왕은 백제 무령왕이 천황가 선조라고 말했다. 이는 환무천황의 모후가 무령왕의 태자인 순타태자의 후손이라는 사실보다는, 바로 무령왕의 직계이기에 했던 말로 추정된다.

또한 무령왕릉의 관은 일본산 소나무 금송(金松)으로 만들어졌다.  이는 일본에서 서거해서 금송관에 입관하고 배에 실어 보냈다고 고려된다. 한국에서 서거하고 금송관을 보내면 입관을 두 번 해야만 한다.

 

참고자료 구주연호 실제와 잡설

 

얼마전까지 일만엔 지폐에 들어있었던 성덕태자 초상이다. 일본 최고의 초상화다.

그런데 원래 그림 제목이 당본어영(唐本御影)이다.

당본어영은 대국의 어영이다. 대국에서 하사한 것이다.

즉 대화조정 성덕태자가 아니라 대화조정이 섬기는 왜국왕, 구다라백제왕의 어영일 수가 있다.

초상화의 주인공이 성덕태자라면 그의 5살짜리 아들이 너무 크다.

그보다는 대국 구다라천자와 구다라 태자, 그리고 뒤에서 수행하는 성덕태자일 수도 있는 것이다.

 

                                성덕태자와 아들 초상이라고 우겨지던 당본어영(唐本御影)

 

 

구주연호 기록의 실제

 

日本書紀

二中歴

麗気記私抄

海東諸国記

如是院年代記

干支

年号

干支

年号

干支

年号

卽位年度

天皇

建元年度

年号

年数

507丁亥

継体

517丁酉

継体

5

 

 

 

522壬寅

善記

4

壬寅

善記

壬寅

善化

壬寅

善記

526丙午

正和

5

丙午

正和

丙午

正和

丙午

正和

531辛亥

安閑

531辛亥

教到

5

辛亥

殷到

辛亥

発倒

辛亥

教到

536丙辰

宣化

536丙辰

僧聴

5

丙辰

僧聴

丙辰

僧聴

丙辰

僧聴

540庚申

欽明

541辛酉

明要

11

辛酉

明要

辛酉

同要

辛酉

明要

552壬申

貴楽

2

壬申

貴楽

壬申

貴楽

壬申

貴楽

554甲戌

法清

4

甲戌

清清

甲戌

結清

甲戌

法清

558戊寅

兄弟

1

戊寅

兄弟

戊寅

兄弟

戊寅

兄弟

559己卯

蔵和

5

己卯

蔵和

己卯

蔵和

己卯

蔵知

564甲申

師安

1

甲申

師要

甲申

師安

甲申

師安

565乙酉

和僧

5

乙酉

和僧

乙酉

和僧

乙酉

知僧

572壬辰

敏達

570庚寅

金光

6

庚寅

金光

庚寅

金光

庚寅

金光

 

 

576丙申

賢称

5

丙申

賢棲

丙申

賢接

丙申

賢称

 

 

581辛丑

鏡当

4

 

 

辛丑

鏡当

辛丑

鏡常

586丙午

用明

585乙巳

勝照

4

 

 

乙巳

勝照

乙巳

勝照

588戊申

崇峻

589己酉

端政

5

己酉

端政

己酉

端政

己酉

端政

593癸丑

推古

594甲寅

告貴

7

甲寅

告貴

甲寅

従貴

甲寅

吉貴

 

 

601辛酉

願転

4

 

 

辛酉

煩転

辛酉

願転

 

 

605乙丑

光元

6

 

 

乙丑

光元

乙丑

光充

611辛未

定居

7

 

 

辛未

定居

辛未

定居

 

 

618戊寅

倭京

5

 

 

戊寅

倭京

戊寅

和景縄

 

 

623癸未

仁王

12

 

 

癸未

仁王

 

 

629己丑

舒明

629己丑

X

己丑

聖徳 6

己丑

聖徳

己丑

聖徳

642壬寅

皇極

635乙未

僧要

5

 

 

乙未

僧要

乙未

僧要

 

 

640庚子

命長

7

 

 

庚子

命長

庚子

命長

645乙巳

孝徳

 

 

15

乙巳

大化

 

 

 

 

 

 

647丁未

常色

 

 

丁未

常色

丁未

常色

655乙卯

斉明

652壬子

白雉

9

 

 

壬子

白雉

 

 

662壬戌

天智

661辛酉

白鳳

23

 

 

辛酉

白鳳

672壬申

天武

672壬申

 

 

壬申

朱雀

 

 

 

 

684甲申

 

2

壬申

白鳳

甲申

朱雀

686丙戌

朱鳥

9

丙戌

朱鳥

丙戌

朱鳥

丙戌

大化

686丙戌

持統

 

697丁酉

文武

695乙未

大化

6

 

 

乙未

大和

壬辰

大長

출처 : 일본사 X-file /일본천황은 백제왕자였다
글쓴이 : 천사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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