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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독일 아리랑과 요코 이야기 - 독일과 일본의 자화상

Jinyoung Ssangkum Ryu 2007. 2. 16. 20:36

  '그 사람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잣대는 그가 과거에 무엇을 했느냐가 아니라, 그가 지금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 말이 MBC의 다큐 스페셜 '독일 아리랑'을 시청한 내가 독일인들을 위해 바칠 수 있는 헌사이다. 그러나 이 말은 '요코 이야기'를 마주한 내가 일본인들에게 던지는 질책의 말이기도 하다.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 내가 갖고 있던 독일인에 대한 이미지는 전쟁, 학살, 나찌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전부였다. 당시 국제 축구 무대를 주름잡던 팀은 통일된 독일 팀이었는데, 텔레비젼을 통해 본 독일 선수들의 인상이라는 것도 하나같이 강렬하고 무감정한 모습이었다. '전차 군단'이라고 붙여진 독일 팀은 강력한 압박과 조직력으로 강팀들을 하나씩 무력화시켰지만, 독일 팀에게 쏟아진 것은 찬사가 아니라 '축구를 재미없게 만드는 주범'이라는 비아냥이었다. 공산세계의 붕괴와 소비에트 해체의 물결 속에 독일은 '자신들이 원하지 않았던 분단의 장벽'을 재빨리 허무는 데 성공했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각 역시 '축하' 보다는 '우려'였다. 통일된 독일이 다시금 강국으로 부상하고 유럽 세계의 균형을 무너뜨리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비아냥과 걱정은 모두가 '기우'가 되었다. 압박 축구를 전세계에 보급한 독일 축구는 아이러니 하게도 그 때부터 쇠락을 길을 걷기 시작했고, 통일 독일 역시 초강대국으로 변모한 것이 아니라 기름때가 낀 전차로 전락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통일 된 독일은 그 엄청난 비용과 국민적 갈등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며 세계 2위의 경제 대국 자리를 일본에 내어주게 되었다. 그런데 독일이라는 나라에 대한 세계의 관심과 두려움이 바래져 갈 그 무렵에 나는 오히려 독일이라는 나라를 새롭게 바라보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서독으로 간호사 파견을 나갔다가 돌아온 외사촌 누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왜 그렇게 못된 나라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을 하러 갔나 하는 의문을 가졌었다. 먼 나라 이웃 나라라는 이원복 교수의 만화를 보면서, 작가가 독일을 호의적으로 그린 이유는 자신이 그 나라에서 공부를 했기 때문이라는 편견만을 가졌다. 남자 고등학생의 80%가 배우는 제 2 외국어가 독일어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한국인들이 도대체 무엇 때문에 독일어를 그렇게 열심히 배워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품어야 했다. 그러다가 나는 내가 왜 독일인에 대해 안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는지 조심스레 반문해 보았다. 생각해 보니 내가 알고 있는 독일이라는 나라에 대한 이미지는 모조리 미국인들이 만든 전쟁 영화에서 유래한 것이었다. 

 

  스무 살 대학생이 되면서, 독일에 대한 나의 관심은 독일에 대한 존경과 나 자신에 대한 반성으로 이어졌다. 스무 살 외사랑의 열정에 신음하고 있던 나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으면서, 100년이라는 세월을 뛰어 넘어 대 문호 괴테와 교감할 수 있었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를 통해 우리 자신이 독일인에 대해 품었던 편견과 막연한 증오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독일로 유학을 다녀온 많은 교수님들이 가난한 자신들을 가르치고 먹여주기까지 한 독일인들에 대해 감사를 표하는 것을 보고 나는 독일이라는 나라에 대해 아주 많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공부가 늘어갈수록, 우리의 문명이 독일인들에게 얼마나 많은 빚을 졌는지도 알게 되었다. 괴테와 헤르만 헤세, 레마르크 같은 위대한 작가들. 칸트와 헤겔로 이어지는 웅대한 철학자들. 막스와 엥겔스, 하버마스 등으로 이어지는 걸출한 사회철학자들. 칼 슈미트로 대표되는 비중있는 법학자들. 베토벤과 슈베르트, 모짜르트(오스트리아) 등의 불멸의 음악가들. 마틴 루터와 같은 선구적인 신학자들. 아인슈타인과 프로이트, 융 등으로 대표되는는 천재적인 과학자들. 독일의 구텐베르크는 세계 최초로 금속 활자를 상용화 시켜 ( 세계 최초의 발명은 우리나라 ) 도서 보급과 유럽 세계의 지식화에 기여하였다. 독일인들은 세계 최초로 전차와 잠수함, 로켓트, 핵무기 등을 만든 우수한 과학자들이었다. 2차 세계대전을 거치는 동안 독일인 장교들은 합리적인 조직 관리의 노하우와 지식을 축적하여 행정학 발달에 크게 기여하기도 하였다. 독일의 사회민주주의는 우리 사회가 궁극적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지침서의 역할을 해주고 있다.

 

  그러나 내가 정말로 독일이라는 나라를 존경하게 된 이유는 그들이 과거를 받아들이는 태도 때문이었다. 미국이 '라이언 일병 구하기' 같은 수 많은 전쟁 영화를 만들어 독일인들에게 참을 수 없는 모욕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영화 스타워즈의 제국군 복장까지 나찌 복장이다) 독일인들은 자신들의 잘못 때문이라며 아무런 이의 제기도 하지 않았다. 나찌가 저지른 홀로코스트(대학살)에 대해 독일인들이 유대인들에게 배상한 금액이 수백조원에 달한다. 강대국들은 전쟁 패배의 책임으로 독일이라는 나라를 네 개로 쪼개었지만(나중에 동.서독이 됨) 독일인들은 아무런 불평도 제기하지 않았고 폴란드에게 아주 많은 영토를 빼았기는 굴욕까지 당해야 했다. 이따금씩 독일 사회를 혼란에 몰아넣는 신 나찌스트의 출현에 대해 독일 정부는 강력하게 대처하고 있으며, 독일의 홀로코스트에 대한 외부세력의 변명 내지 옹호에 대해서 오히려 독일인들 스스로는 고개를 가로 젓고 있다. 2차 세계 대전이 종전으로 치닫자, 히틀러를 포함한 많은 장교들이 전쟁의 책임을 지고 자살을 택하였지만, 일반 장교나 병사들은 광기에서 깨어나 항복을 하거나 일상으로 돌아왔고 반성했다. 승전국들이 나찌에 협력한 매국노들을 찾아내어 정죄하는 일에 독일은 적극 협력하였다.  

 

  반면에 섬나라 일본은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 독일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후안무치한 일본의 모습을 통해 나의 독일인들에 대한 존중은 더욱 빛을 발한다. 일본은 지금도 갖은 로비를 통해 일본군의 잔학상을 그리는 영화가 제작, 상영되지 못하게 막고 있다. '요코 이야기'같은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한 책의 유포를 통해 자신들의 죄악을 교묘히 희석시키고 심지어 미화하고 있다. 자신들이 저지른 전쟁과 학살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는 논리를 전파하고, 종군 위안부 같은 전쟁 범죄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전쟁은 일본이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분단의 고통은 우리가 뒤집어 써야 했던 이 말도 안 되는 역사 앞에서 일본은 우리에게 단 한 번도 진심 어린 반성과 용서를 구하지 않았다. 가장 가까운 이웃 국가인 우리 나라를 '서쪽에 있는 가장 가까운 나라'가 아니라 '동쪽에 있는 가장 먼 나라'로 대하며 무시하고 있으며, 과거 침략과 강점에 대해 제대로 된 배상조차 하고 있지 않다. 국가가 나서서 신 제국주의와 전쟁 광기를 부추기고 있는 나라가 일본이다. 패전의 책임으로 러시아에게 빼앗긴 북방 섬을 빨리 내놓으라는 뻔뻔한 억지를 부리는 나라가 일본이다. 그 어느 나라도 일본의 전쟁 범죄에 대해 옹호해 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들 스스로 죄악은 없었다고 홍보하고 다니는 나라이다. 패전을 목전에 두고, 일본군의 일반 장교와 병사들은 불구덩이로 뛰어들고 할복을 하였지만, 정작 책임져야 할 지도자들은 항복했고 비겁하게 살아남았다. 일제에 협력한 매국노들을 정죄하려는 노력에 일본인들을 전혀 협력하지 않았고, 오히려 은폐시켰다. 그래서 뻔뻔한 일본인보다 한국인들을 '동쪽에 있는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 더 인정해 주고 존중해 주는 유일한 서구 국가 역시 독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게르마니아인들은 무뚝뚝하고 웃을 줄 모르는 민족이라고 말한다. 노란 머리와 눈썹까지 더해 그들의 하얀 얼굴은 다소 무서워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진정으로 독일인을 이해한다면 그러한 외모가 그들을 대변할 수 없음을 우리는 깨닫게 된다. 독일어는 딱딱하고 억센 언어라고 하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독일어는 절제된 아름다움과 운율을 갖춘 언어이다. 무엇보다 그들의 따뜻한 감성과 이성이 우리를 깊이 감복케 한다. 냉전 시대에 동독에 온 북한 유학생과 결혼한 동독 여인 '레나테 홍'의 이야기를 다룬 MBC 다큐 스페셜 '독일 아리랑'은 독일인들에게 한국인들이 지녀야 할 마음의 빚을 상기시켜준 프로그램이었다. 북한으로 강제 송환 당한 남편을 40년 넘게 기다리고 있는 여인들의 모습에서 나는 한민족으로서 마음 속에서 우러나는 부끄러움과 미안함을 맛보았다. 서독 시절 독일인들은 가난한 한국인들을 데려다가 광부와 간호사 자리를 주었고, 그 수입을 통해 우리는 산업화를 이루었다. 독일 정부는 수 많은 한국 유학생들을 받아들여, 그들에게 무상으로 교육을 시켰고 생활비까지 대주었다. 수 많은 독일인들이 인종적 편견없이 한국인과 사랑을 하였고 결혼을 하였다. 독재 정권 시절 국내에서 탄압받던 윤이상, 송두율과 같은 지식인들에게 망명길을 열어 주었고 그들의 재능에 걸맞은 존중과 대우를 해주었다. 동독 정부 역시 예외가 없어서 북한의 많은 유학생들을 교육시켜 주었고 또 생활터전까지 마련해 주었다. 통일이 된 지금도 가난한 북한의 근로자들을 데려다가 일감을 주고 경제적 지원을 해주고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독일인들이 너그럽게 받아들여주고 존경해준 대 음악가 윤이상은 고국 땅을 밟아 보지도 못하고 이국에서 명을 달리 하였다. 굳은 결심으로 귀국한 송두율 교수를 잡아다가 이적이니 빨갱이니 하는 죄명을 붙여 당사자와 독일인들에게 모욕을 주었다. 서독에서 자리잡고 살다가 남은 여생을 한국에서 보내려고 하는 동포들과 독일인 가족들을 위한 터전 하나도 마련해 주지 않고 외면하고 있다. 우리의 배은망덕한 모습과 추악한 자화상은 도대체 일본인들과 다를바가 무엇인가? 베트남 전쟁에 참전해 수 많은 '라이따이 한'을 남겨두고 온 한국인들은 여전히 그들을 차갑게 외면하고 있다. 이름조차 생소한 나라 '코레아'에서 온 우리를 따듯하게 맞이해 주고, 도와주었으며 사랑해준 수 많은 '레나테 홍'들에게 우리가 갚아야 할 마음의 빚은 얼마나 큰 것인지 나는 가늠조차 할 수 없을 것 같다.

 

  정혼자가 있는 샬롯테를 사랑한 베르테르는 결국 그 사랑을 빼앗기 보다는 자살을 결심하였다. 베르테르의 선택은 '욕망'보다는 '도덕'을 택한 독일인들의 정직한 심성을 잘 대변하고 있다. 독일인들이 선택한 사회민주주의는 인간의 '끊임없는 탐욕' 보다는 '함께 평등한 자유'를 선택한 위대한 독일 윤리의 자화상이다.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추억을 평생 아름답게 간직한 '독일인의 사랑'을 통해 나는 북방민족 게르마니아인에 대한 묘한 동질감과 깊은 사랑을 맛보았다. 40년이 넘도록 북한에 있는 남편과 연인을 그리워하며 홀로 살아온 독일 여인들의 '긴 기다림'이 낯설지 않은 이유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그 '기약 없는 기다림'이 내 뼛속까지 아프고 부끄러운 이유이다. 

 

  '레나테 홍'의 남편 홍인철 씨가 북한에 살아있다는 소식이 북한 적십자를 통해 전해졌다고 한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독일인들의 아름답고 깊은 사랑을 기리기 위해 나는 한 달 가까이 '독일인의 사랑'을 내 가방에 품고 다녔던 기억이 있다. 우리가 독일인들에게서 입은 고마움을 조금이라도 갚기 원한다면, 북한에 있는 남편들이 독일의 여인들과 재회할 수 있을 때까지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독일의 동포와 그 가족들이 한국에서 편안하게 정착할 수 있도록 모든 제도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미국 의회에서 종군 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의회 청문회와 피해자 증언이 있던 같은 시간에, '요코 이야기'의 저지 요코는 여전히 일본이 피해자라는 기자 회견을 열었다고 한다. 이 뻔뻔한 일본인들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일본이 계속해서 한국인들을 무시할 때 그들에게 실질적으로 돌아갈 피해가 크다는 것을 이제 한국인들이 보여주어야 할 때이다. 일본 제품의 구매는 물론, 일본 여행 등도 자제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를 35년간 수탈하고, 부끄러워 하지도 않으며, 사죄도 하지 않고 배상하지도 않는 일본인들에게 우리는 무역을 통해 매년 10조원이 넘는 이익을 안겨주고 있다. 어차피 우리의 기술로 만들 수 없어 수입해야 하는 것들이라면, 조금 비용이 더 들더라도 차라리 그 원자재와 부품소재들을 독일에서 수입해야 한다고 나는 여긴다. 왜 우리는 원수를 은혜로 갚고, 은혜를 원수로 갚는가? '과거에 그들이 무엇을 했는가?'를 묻는다면 독일인도 일본인도 그 원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지금 그들이 어떤 모습인가?'를 묻는다면 일본인들과 달리 독일인들은 그 질문으로부터 훨씬 자유롭고 당당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일본인들보다 훨씬 떳떳하게 '훌륭한 도이칠란트'를 외칠 수 있다고 믿는다.

 

출처 : 시사
글쓴이 : 누구세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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