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EDONG KUMDO OVERSEAS ACTIVITIES/Greece

그리이스의 역사 퍼옴

Jinyoung Ssangkum Ryu 2006. 10. 16. 22:38
미전도종족 기도정보

그리스 (Greece)

[국기] 그리스는 남유럽 발칸 반도의 남단에 위치해있다. 이 나라는 서구문명의 태생지였으며 문화와 정치체제를 세계화하는 데 상당한 공헌을 했다. 국토는 바위가 많고 비옥한 토양은 적은데다 농업이 주도적인 경제적 활동을 담당하고 있지만, 산업과 제조업이 점점 더 경제에 중요해지고 있다.

2,000년 동안 외국의 지배를 받아오다, 그리스는 1827년에 오스만 투르크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획득했다. 빈곤한 정부이기 때문에 경제적 성장도 어려웠으나, 유럽연합에 가입한 후 경제는 활성화되었다.

그리스 정교가 국교이며, 다른 소수의 종교는 정부로부터 약간의 차별을 받고 있다.

이 나라에 거주하는 종족

그리스계 롬 집시
루멜리안 투르크
발칸 집시
포마크

[국가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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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한 그리스 대사관
    주소 : 서울시 중구 장교동 1 현암빌딩 27층
    전화 : 752-9662, 729-1401


    선교사 개인기록
    성   명  : 고 경진(KO KYOUNG-JIN)
    생년월일 : 1955년 10월 18일(음), 서울, 대한민국
    주    소 : GIONAS 8, ARGIROUPOLI 164 52, Athens, GREECE
    전자우편 : kokj@hol.gr
    전    화 : 30-(01)-992-4188
    직    분 : 목사(1991.11.28 목사안수)
    전문사역 : 그리스 50만 집시부족 선교
    교    단 : 대한 예수교 장로회
    파송기관 : 사단법인 기독교국제선교협회(I.M.C)
    파송일자 : 1992. 5. 17
    가족사항 : 아내  손수복(孫守福)
               아들  고요한(高僚韓)
                 딸  고은별(x x x )
    

    일반적 그리스 현황
    ★ 개요 ★
    ▶국 명: 희랍 공화국(THE HELLENIC REPUBLIC)
    ▶수 도: 아테네(Athens, 인구 약 450만 명)
    ▶면 적: 133,000 Km2(본도 81%, 도서 19%, 한반도의 3/5)
    ▶인 구: 11500천명('98.3)
    ▶민 족: 희랍인(97%), 터키인, 기타(유태인, 알바니아인, 슬라브인등 1%)
    ▶언 어: 희랍어
    ▶종 교: 희랍 정교(GREEK ORTHODOX 98%)
    ▶독 립 일: 1830. 3. 25
    ▶정부형태: 대통령 중심 의원 내각제
    ▶국 회: 단원제(300명, 임기 4년)
    ▶GNP: US $ 1123.8억('95)
    ▶1인당 GNP: US $ 11,167('98)
    ▶주요경제 지표('95)
    -GDP성장률: 1.7%
    -물가 상승률: 9.3%
    -실업률: 9.2%
    ▶화폐 단위/99년 현재 기준 환율: 드라크마/US $ 1: DR 345
    ▶군사력: 162,300명(의무병제)
    ▶위 치: 북위 34 38'-41 45', 동경 19 22'-29 38', 발칸 반도의 남반부에 위치하며 북쪽으로는 알바니아, 유고, 불가리아 및 터키와 1,181KM에 걸쳐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동쪽은 에게해, 서쪽은 이오니아해 그리고 남쪽은 지중해와 연하고 있음.
    ▶지 형: 산지 43%, 구릉지 27%, 평지 30%의 산악국가로서 발칸 반도의 중부에 뻗어있는 핀도스 산맥에 의해 동, 서로 양분되고 최고봉은 올림프스 산(해발 2,917M)이며, 서남쪽의 펠레폰네소스 반도는 평균 해발 600M의 고지대임. 해안선은 리아스식으로 복잡하게 굴곡 되어 있고 육지의 함몰에 의해 형성된 에게해의 무수한 도서 군으로 이루어져 있음.
    ▶기 후: 북구 국경 지대와 중부 산악 지대(대륙성 기후)를 제외한 전지역은 지중해성 기후로 온화한 편이며 아테네는 20년에 한번 얼음이 어는 정도임. 여름(6월 -9월)은 덥고 건조하며, 가을(9월 초 -12월 중순)은 온화하며 강우량이 많고, 겨울(12월 중순-2월)은 기온이 약간 낮지만, 간간이 비가 내리기도 하며, 봄(3월-5월)은 온화한 날씨를 보임(연평균 강우량 394mm, 106일) 과일 재배를 제외한 일반 곡물 농경에는 부적당함. 반면 항해가 성행할 수 있는 항구 조건이 좋음.

    ★ 고대역사 ★
    ▶희랍 사회는 본질적으로 동질 민족으로 구성되어 공통 언어(희랍어) 및 종교(희랍 정교회)를 바탕으로 한 사회임. 고대로 다른 언어를 갖는 민족을 BARBAROI라고 이민족을 차별하였음
    ▶희랍인은 자신들의 거주지를 HELLAS라 부르고 희랍 민족 전체가 HELEN신의 후예인 HELLENES (헬레네인)라 믿는 강한 유대 인식을 가짐.
    ▶희랍 종족인 이오니아족, 아케아족, 도리아족중 가장 그리스적인 종족은 도리아족이며 그리스 반도의 중앙에 자리잡음.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죽은 후(323. B. C)부터 로마가 그리스 세계를 지배하게 될 A. D시작까지의 약 3C 기간의 역사를 헬레니즘의 시대(HELLENITIC AGE)하고, 알렉산더 대왕 이전의 문명을 고전적인 그리스 문화(HELLENIC CULTURE)라함. 헬레니즘 시대는 고전적 그리스 문화에 각 POLIS(폐쇄적이고 자충적 문화)의 특성을 흡수한 시기임.

    ▶희랍 문화의 특징
    *그리스 문화재의 중요한 부분을 오리엔트인으로부터 받아들임.
    *그리스인은 종교의 지배를 벗어나서 세계와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고
    순수한 이론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참다운 학문의 길을 개척함. 이러한
    진리 탐구의 학도를 애지자라 부름.
    *아테네 사람의 현세적 생활의 향유를 묘사한 극작가 EURIPIDES
    (480-406)의 말: "한밤중에 정원을 산책하며 거니는 것, 귀뚜라미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 달밤에 피리 부는 것, 산에 올라가서 맑은 샘물을 마시는 것, 포도주를 마시면서 노래를 부르는 것, 춤을 즐기면서 하루를 보내는 것, 이 모든 것이 그리스의 환락인 것이다. 가난하고, 소탈하고, 그리고 영원히 젊은 인생의 환락이다. "
    ▶아테네인의 아버지는 어린아이의 양육 여부를 결정 극빈한 가정에서도 남아는 키우고 부잣집에서도 여아는 버리는 경향, 여아는 어머니의 양육으로 시종일관 복종, 정숙과 같은 덕성을 훈육 15세에 이르면 여아는 부모가 시민계급 중에 선택하는 사람과 결혼
    ▶스파르타인의 생활 풍습
    *스파르타인은 대부분의 인생을 군대 생활에서 보냈으며 교육은 거의
    전적으로 군사 훈련으로 제한되었음. 출생 후 신체검사를 받아 허약한
    아이는 버리게 되고 7세부터 국가에서 집단 양육(낮에 부인 얼굴 보기 전에 자녀 갖는 경우 있음)

    ◇헬라스의 분열
    ▶아테네가 지배하고 있던 델로스 동맹과 스파르타 지배한 펠레포네소스 동맹의 헬라스 통일 투쟁.(펠레포네소스 전쟁 431-401B. C)
    *아테네: 이오니아인의 상업적 문화도시
    *스파르타: 도리아인의 군국적 농업 국가
    ▶펠로폰네소스 전쟁 후 스파르타가 아테네(참패)를 비롯해 거의 모든 헬라스를 지배함.
    ▶이후 페르시아가 그리스를 재침,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굴복시키고 페르시아왕의 영향력 하에 지배되어 4세기 헬라스는 중심세력을 상실하고 혼란기에 들어감.

    ◇ 아테네의 Isocrates(436-338 B. C)에 의해 헬라스의 정치적 통일 실현과 범 헬라스 정책을 추진

    ◇ 마케도니아 국왕 PHILIP(359-335 B. C)에 의해 338 B. C 헬라스통일
    ▶마케도니아인은 본래 헬라스와 동족 이였으나 언어, 풍속이 헬라스와 달라 바바리언으로 부르며 이민족으로 취급, 그러나 필립왕은 그리스 문명의 가치를 인식하고 마케도니아를 그리스화 하려고 노력함.
    ▶알렉산더 대왕(336-323 B. C)은 소년 시절부터 헬라스의 대 철학자 ARISTOTLE(384-322B. C)에게 그리스적 교육 이수, 그리스 문명을 중심으로한 동서 세계의 통일책이라는 소년 시절의 꿈을 실현함.
    :인도-지중해-아프리카 각처에 그리스식 도시 건설
    (그리스어, 그리스식 생활 보급)

    ◇페르시아전쟁(492-497 B. C)
    ▶페르시아는 B. C 6세기반 서남 아시아 통일, 그리스 식민지 정복, 압제 정책수행
    ▶국왕 다리우스 1세(521-486 B. C)는 속령 페니키아의 지중해 무역 보호, 이오니아인을 압박하고 무역에 타격 줌.
    ▶이오니아인은 MILETUS시를 중심으로 독립운동 전개, 본국의 아테네도 함대 파견하여 후원했으나 페르시아 제국의 무력에 의해 제압(493B. C)
    ▶다리우스1세는 490B. C 아테네 정복차 원정군을 파견했으나
    MARATHON 전투에서 패배
    ▶아들 크세르크세스가 480B. C 그리스 원정시 스파르타와 아테네가 상호 싸움 중지, 조국 방위에 협력 SALAMIS만 해전에서 승리하고 다음에 스파르타는 PRATAE에서 아테네는 MYKALE에서 페르시아 잔부를 격멸, 종전.
    ▶페르시아 전쟁의 역사적 의의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오리엔트와 유럽의 세계적인 투쟁에서 유럽 세계 의 승리로 유럽 민족과 고대 문명이 지도적 지위 점령 계기
    *아시아의 대번영을 보기 되어 그리스 고전 문명의 완성 이룩. B. C
    5세기는 그의 정치, 경제, 문화 활동이 가장 왕성한 시대

    ◇델로스 동맹을 통한 헬라스 통일
    ▶페르시아의 제기에 대항하기 위해 477B. C 델로스 동맹을 체결(200개의 폴리스) 대 함대를 상비하여 동 지중해 해상권 장악, 헬라의 최강의 해군을 가진 아테네가 맹주로서 절대적 지도권 장악(아테네제국)
    ▶아 대 정치가 페리클레스(461-429B. C) 지도하에 민주국가로서 크게 번영하고전 헬라의 학문, 문학, 미술 등이 발달 그리스 고전 문명의 황금기 실현.
    ◇헬레니즘 세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은 그리스내 폴리스간의 분규로 인한 혼란기에 그리스를 지배하고 시리아, 팔레스타인, 이집트를 정복하고 페르시아군을 격파(331B. C)하여 인더스 강까지 점령(324B. C), 이집트에 알렉산드리아시를 건설, 번영케 하였으며 바빌론에서 열병으로 사망
    ▶알렉산드리아 시는 헬레니즘 시대의 가장 큰 도시로서 헬레니즘 문화의 중심 도시 인구 50만-100만, 도로 포장되고 잘 구획 됨, 훌륭한 공공건물과 공원이 있고 박물관과 75만 권의 장서를 보유한 도서관 보유
    ▶헬레니즘 세계는 동서 문화를 융합시킨 세계적 문화를 형성하였으며 그리스어가 공용어로 됨.
    ▶ARISTARCHUS(284-264B. C)는 월식 관측을 기초로 기하학적 계산에 따라 태양이 지구보다 300배정도 크다는 결론을 도출했으며 지구가 태양주위를 회전한다는 원동설(오늘날의 지동설) 주장. ERATOSTHENES(276-195B. C)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장이며 지질학자로서 지구의 직경, 태양과의 거리 계산
    ▶헬레니즘 시대 건축은 고전 시대의 신전으로부터 궁전, 극장, 도서관, 개인 저택으로 전환
    ▶고전적 그리스 사상인 정신과 육체와의 조화라는 관념은 사라지고 숭고한 육체의 이상미는 관능미로 바뀜. 즉 이상주의가 리얼리즘으로 전환.

    ◇고전적 그리스 문명과 헬레니즘 문명의 차이
    ▶고전적 그리스 문명: 혈연, 종교, 언어, 문화가 공통적이라는 민족적 의식이 강함.
    ▶헬레니즘 문명: 모든 인류는 동포라는 사고방식에 입각한 개인주의, 세계주의적 사조가 지배적 이였음.
    ▶헬레니즘은 인도에 전파되어 GANDGARA 예술을 생성하고 동진 하여 중국, 한국, 일본에까지 미치게 되었으나 동양 문명의 본질에까지 영향을 미치지는 못함.

    ◇헬레니즘의 중심지
    ▶시리아의 수도 ANTIOCHIA: 동서 교통의 요충지
    ▶이집트 수도 알렉산드리아: 세계 최대의 상업 도시, 학문, 예술의 중심 지로서 세계 최대의 도서관, 동/식물원, 천문대 건립. 기하학, 지리학, 역사학의 대가 배출(유클리드, 에라토스테넷, 마네톤)

    ★ 일반역사 ★
    ▶B. C. 2000년경부터 인도-유럽 어족의 분파(이오니아족, 아케아족, 도리아족)가 발칸반도로 남하하여 희랍 본토와 에게해 일대에 거주하면서 에게문명과 오리엔트 문명을 받아들여 혈연,
    언어, 종교, 문화를 같이하는 희랍 세계를 형성함.
    ▶희랍의 역사 시대는 1200-800 B.C.에 시작되며 이때를 암흑시대 혹은 호메로스 시대라고 부른다.
    ▶B. C. 1000년경까지는 씨족공동체를 유지하였으며 B. C.8-9년에는 아테네, 스파르타 등 폴리스를 형성 헬라인이라는 지칭하는 선민 의식을 갖고 있었음.(도시국가: 본토에 100여 개, 식민지 포함 1000여 개)
    ▶아테네, 스파르타 등 도시국가가 동맹하여 페르시아 전쟁(B. C. 492-479)에서 승리한 후 아테네는 펠로포네소스 전쟁(B. C.431-404)등 내란이 이어졌으나 철학, 역사, 연극 등 모든 학문 분야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함.
    ▶B. C. 388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아테네가 정복된 이후 희랍은 마케도니아 지배 시대, 로마/비잔틴 지배 시대, 오토만 터키 지배에 이르기까지 타민족의 지배하에 있었음.
    -마케도니아 지배 기간: B. C388-B. C 2세기
    -로마 지배 기간: B. C 2세기-A. D 395
    -로마분리후 비잔틴 지배 기간(동로마 제국): A. D. 395-1453
    -오토만 터키 지배 기간: 1453-1830
    -입실란티 형제의 거병(1821-1827)으로 시작된 독립 항쟁 전개 영, 불, 러 지원하에 1830, 2월 런던 의정서에 의해 독립 보장, 1830. 3. 25 독립왕국 수립
    ▶독립 왕국 수립 이후 영, 불, 러시아가 내정간섭 지속 1843년 영, 러시아 조종 에 의한 군부 쿠테타등 정국 불안 계속, 희랍 제국 재건을 위한 위대한 계획도 주변 강대국에 의해 저지.
    ▶GEORGE 1세 치하(1863-1913) 1863년 의회에서 민주적 헌법이 채택되어 입헌
    군주국이 됨. 1878년 싸이프러스가 오토만 터키로부터 영국 지배로 되고 1,2차 발칸 전쟁(1912-1913)에서 승리하여 데살로니카와 마케도니아의 일부 지역 회복.
    ▶터키와의 전쟁 결과로 1923년 로잔 조약이 체결됨으로써 양국간의 영토는
    현재의 상태로 확정됨
    ▶1941. 1 - 1944. 10간 독, 이, 불가리아에 의해 점령. 국내적으로 좌익인 민족 해방 전선과 우익, 공화파인 민족 민주 연맹이 레지스탕스 운동전개 등 내란이 확산되었으며 1947년 트루만 독트린에 따른 미국의 군사, 재정 원조로 1949년 내란이 종식되고 입헌 군주제(왕정)로 복귀함.
    ▶입헌군주제로 복귀한 후 계속적인 약체 내각의 교체로 정정히 불안해짐에 따라 군부의 정변을 초래할 가능성이 증대됨. 1965년 7월 당시 CONSTANTINE 국왕이 GEROGE PAPANDREOU 수상(ANDREAS PAPANDREOU 1981-1989수상 부친)과의 반목을 기화로 내각을 일방적으로 해임함에 따라 국내 정정히 극도로 불안해지자 1967년 4월 GEORGE PAPADOPOULOS육군 대령의 무혈 군사 쿠데타가 발생하여 희랍(구주 지역) 역사상 최초의 군사 정권이 수립되었음.

    ★ 정치 ★
    ▶PAPADOPOULOS주도하의 군사 정권은 표면적으로는 민주 헌정을 표방하였으나 정당활동 금지 및 계엄령 실시등 군부 독재 정치를 시행하였고, PAPADOPOULOS 자신이 1967년12월에 수상에 취임 한데 이어 1972년 3월에는 섭정에 즉위하였음. 그리고 1973년 6월 국민투표를 실시하여 국체를 왕정에서 대통령 중심제 공화정으로 변경한 후, 7월에 대통령에 취임하는 등 군부 독재 정치를 무리하게 추진하자 11월 이에 반발한 DEMETRIOS IOANNIDES 헌병준장에 의한 역 쿠테타가 발생함에 따라 신 군사 정권의 수립을 맞이하게 되었음.
    ▶IOANNIDES 장군을 주축으로 한 소수 혁명 주둔 장교들은 혁명 이후 PAIDON GHIZIKIS중장을 대통령에 임명하고 민간인 ADANTIOS ANDRATSOPOULOS를 수상으로 하는 민간 내각을 구성하였으나, 실제 권력은 IOANNIDES장군 주도하의 군부에서 장악하였음.
    ▶1974년 7월 싸이프러스와 희랍간의 통합을 위한 ENOSIS운동을 지원하여
    싸이프러스내 군부 쿠데타를 유발시킴으로써 MAKARIOS 당시 싸이프러스 공화국
    대통령을 축출하였으나, 터키의 군사 개입을 초래하였고 이어 대한 책임으로 ANDRSTSOPOULOS 내각이 사임하였음.
    ▶이에 따라 GHIZIKIS대통령은 당시 불란서에 망명 중이던 CONSTANTINE KARAMANLIS 전 수상에게 조각을 위촉함으로써 민정 복귀가 이어지고 계엄령 및 언론 통제가 해제되었으며 공산당을 포함한 전반적인 정당 활동의 재개가 허용되었음.
    ▶1974년 11월 민정 이양을 위한 총선거에서 KARAMANLIS 수상이 창당한 신민당이 압도적 다수 의석(총 300중 224석, 득표율 54%)을 확보하여 단독 내각을 구성하였고 1974년 12월 국민투표에서 입헌군주제가 완전히 폐지되는 한편, 1975년 6월 신 공화제 헌법이 선포되면서 CONSTANTINE TSATOS가 대통령에 선출되었음.
    ▶집권 초기에 신민당 정부는 오랜 군정으로 인한 국민의 민주화 여망에 부응 키 위하여 대내적으로는 공산당의 합법화 등 좌익 세력에 대한 관용, 언론 통제폐지 및 자유 시장 경제정책을 추진하였고, 대외적으로는 발칸 제국 및 제 3 세계와의 관계 개선에 주력하였음.
    ▶그러나 국내 좌우익 세력간의 충돌, 경제적 불황, EC가입 문제 , 싸이프러스 사태 해결 부진 및 터키와의 분쟁 격화 등으로 국내 정정이 점차 불안해지자 신민당은 국민의 재 신임을 묻기 위하여 총선거를 1년 앞당겨 1977년 11월에 실시하였음. 조기 총선에서 단독내각 구성이 가능한 의석(173석)을 재 확보하였으나 1974년 총선 대비 51석을 상실하는 등 국민의 지지율이 급격히 하락하였음.
    ▶이에 자극을 받은 신민당은 장기 집권을 위한 체제 정비를 위하여 1980년 5월 KARAMANLIS 수상을 대통령으로 선출하였고, GEORGE RALLIS를 당수 및 수상에 임명하였음. 그러나 1974. 11 민주 회복과 함께 창당한 PAPANDREOU 당수가 이끄는 사회당(PASOK)의 강력한 도전을 받아 81.10.18 총선에서 신민당의 재집권은 실패.
    ▶81. 10. 18 총선에서 사회당(당수 ANDREAS PAPANDREOU)은 집권당인 신민당을 누르고 총 의석 200석 중 172석(득표율 48%)을 확보하여 단독내각을 구성
    하였음. 이는 국민들의 신민당 장기 집권(74-81)에 따른 권태감과 물가고, 고 실업율 등 민생문제에 대한 정부시책의 실패 및 불란서내 사회당 정권 등장에 따른 심리적 영향을 반영하는 것이었음.
    ▶사회당 정부는 선거 공약 사업의 일환으로써 사회주의 개혁을 추진하였는바, 선거 연령의 인하(18세), 신고결혼 및 이혼 인정, 간통죄 폐지, 대학교육체제의 개혁, 중요기간 산업의 국유화, 임금의 인플레 연동제 등을 채택하였음.
    ▶그러나 사회당 정부는 선거 공약 사업인 EC 및 NATO탈퇴, 미군 기지 철수 등을 이행하지 못한 한편 고인플레이, 실업율 증대, 국제 수지 적자 증대에 따른 외채 증가, 경제 사정의 약화로 국민의 지지가 점차 하락 추세를 보였고, 1984년 6월 구주 의회 선거에서 사회당과 근소한 차이의 득표율에 자극 받은 신민당이 당수를 고령의 AVEROF대신 PAPANDREOU 수상에 필적할 만한 MITSOTAKIS로 교체하는 등 수권 기반보강에 주력하자 조기 총선을 추진하게 되었음.
    ▶결국, 사회당 정부는 국민들의 지지율이 더 이상 하락하기 전에 조기 총선을 실시키로 결정하고 85년 5월초 예정되었던 대통령 선출을 3월로 앞당겨 실시하여 KARAMANLIS(신민당 출신)대통령 후임에 전직 대법원 판사인 CHRISTOS SARTSETAKIS를 선출하는 한편 85년 10월로 예정되었던 총선을 6월 2일에 실시 함으로써 근소한 차이로 신민당을 누르고, 총 의석 300석 중 161석을 확보(득표율 45.8%)함으로써 단독내각을 구성하여 재집권하였고, 1986년 3월 6일 수상과 국회 권한을 강화하는 한편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헌법개정을 단행함으로써 집권기간(1985-1989)중 정치권력 기반을 강화하였음.
    ▶89. 6. 18일 실시된 총선에서 야당인 신민당이 총 의석 300석 중 145석을 획득,
    사회당(125석)을 패배시켰으나, 절대 과반수를 획득하지 못하여 89. 7. 1 공산당을 위시한 좌파연합(28석)과 임시 연립 내각을 구성, 89. 11. 5실시된 2차 총선에서 신민당이 148석, 사회당이 128석, 좌파 연합이 21석을 획득, 어느 당도 과반수 의석을 획득하지 못하여 6개월 이내 제3차 총선을 실시하는 조건으로 3당이 전희랍 은행총재인 ZOLOLOTAS를 수상으로 천거하여 3당 연립내각 구성.
    ▶90. 4. 8 총선 결과 MITSOTAKIS 당수가 이끄는 신민당은 150석을 획득, 1석을 획득한 민주개혁당(85년 신민당에서 분당)의 지지를 받음으로써 가까스로 과반수인 151석을 확보 집권함. 이어 의회에서 실시된 대통령 선거 결과 2차투표(90. 5. 4)에서 집권 신민당의 카라만리스 후보가 재적의원 300명 중 153명의 지지 획득으로 대통령이 됨. 이후 선거 재판 결과 신민당 후보가 당선 확정됨에 따라 93. 9월 현재 152석을 확보하고 있음.
    ▶93. 10.10일 조기 총선 결과 PAPANDREOU이끄는 사회당이 170석을 획득
    재집권하였으며 PAPANDREOU 수상이 건강문제로 사임(1996. 1), SIMITIS의원이 수상과 당수로 선출되어 전임 수상의 남은 임기(1997.9)을 대신하게 되었으나,
    조기 총선을 결정 9.22일 총선을 실시하였음.
    ▶96.1.21 전임 PAPANDREOU 수상이 건강상의 이유로 수상직을 사임,새로운 수상으로 선출된 SIMITIS 수상은 취임 후 8개월만에 조기 총선을 실시(96.9.22일), 93년 총선(170석 확보,지지율 46.9 %)에 비해 의석수가 줄어든 163석을(41.6% 지지율) 획득, SIMITIS 수상이 이끄는 사회당이 재집권 하였음.

    희랍 근대 역사 주요 연표



    1453-1830 오토만 터키제국 지배
    1821-1827 독립 전쟁
    1830 독립 왕국 수립
    1932 공화제 채택
    1935 왕정 복귀
    1941-1944 독, 이, 불가리아에 의해 점령
    1967. 4 무혈 군사 쿠데타로 군사 정권 수립
    (PAPADOPOULOS대통령)
    1973. 6 대통령 중심 공화제 선포
    1973. 11 역 쿠테타로 신 군사 정권 수립(IOANNIDES 준장)
    1974. 8 NATO 군사위 탈퇴
    1974. 11 민정 이양 총선 실시(신민주당 집권)
    1975. 6 신 민주공화제 선포(공화국 헌법 채택)
    1977. 10 총선 실시(신 민주당 재집권)
    1980. 10 NATO군사위 복귀
    1981. 1 E. C.가입
    1981. 10 총선 실시(사회당 집권)
    1985. 3 총선 실시(사회당 재집권)
    1986. 3 헌법개정 단행
    1989. 6.18 총선 실시(신민 당, 좌파 연합 임시 연립 정부)
    1989. 11.5 총선 실시(신민당, 사회당, 좌파 연합 임시 연립)
    1990. 4. 5 총선 실시(신민당 집권)
    1993. 10.10 총선 실시(사회당 집권)
    1995. 3. 7 WEU 가입
    1996. 9.22 총선 실시(사회당 집권)

    ★ 기구
    . 대통령
    ▶대통령은 국가원수이며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임기 5년으로 의회에서 재적의원 2/3이상
    찬성투표로 선출되며 1회에 한하여 재임 가능함.
    ▶대통령의 주요 권한
    -수상 후보자 지명 수상 제청 각료 임명권
    - 총사령관으로서 국군 통수권 전쟁 선포권
    -대통령 선출 불가능 또는 수상 요청시 의회 해산권
    -대법원 판사 임명권
    -법률 공포 조약 비준권
    -의회 동의하의 국민투표 실시권
    -수상 동의하의 국민 성명 발표권등

    . 행정부
    ▶수상 각료로 구성된 내각으로서 헌법 법률에 의한 일반 정책의 결정 시행
    ▶수상은 다수당의 당수로서 대통령이 의회의 추천에 따라 지명하며, 내각은 국회의
    신임 하에서만 존립이 가능(수상 포함 각료 37)
    ▶지방행정
    전국은 54개지역(NOMOI 통칭)으로 구분되어 인구 10,000 이상의 상급 자치단체인 303개의 (MUNICIPALITY) 500 이상의 하급 자치단체인 5,698개의 (COMMUNE)으로 구성.

    . 의회
    ▶단원제로서 비밀, 직접, 개별 투표로 선출되는 임기 4년의 의원 300명으로 성됨.
    ▶주요 권한: 입법권, 대통령 선출권, 수상 후보자 추천권, 대통령 . 현직 각료 탄핵권, 국민투표 실시 요청권
    ▶의석 확보 주요 정당: 사회당, 신민당, 좌파 연합 민주개혁당
    ▶선거법: 관례적으로 4 의원임기 종료 직전에 집권 행정부는 차기 선거 실시 방법을 규정한 선거법() 국회에 제출 재적 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확정.

    라. 사법
    3 제도하에 대법원, 고등법원, 하급법원(민사, 형사 행정 법원 구분)으로
    구성되며, 행정부의 위헌 여부 행정권 남용을 최종적으로 심판하는 특별재판소가 있음.
    ▶각급 판사는 대통령이 임명하여 형사 처벌을 받지 않는 , 정년은 65세이며 재판의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영리 목적의 겸직은 금함.

    ★ 교육 ★
    가. 교육 수준
    ▶희랍인은 교육이 사회적 성공의 주요 방편이라고 믿어 교육열은 높은 편이나 교육 수준은 교육 투자의 결여, 과도한 고전교육에 치중하고 직업 과학교육을 경시한 교육정책, 교육행정 운영, 전근 등으로 변화하는 현대사회의 요구를 충족하는데 미달하고 있다.

    나. 교육제도
    ▶1976년에 정부는 교육 개혁안을 마련 1980년부터 새로운 교육제도를 전면 적용하였으며 직업 및 기술교육을 효율화하고 이를 위하여 종전의 KATHAREVOUSA(고어)를 폐지하고 DEMOTIKI(현대어)만을 사용토록 결정하였으며 의무교육 기간을 9년으로 연장하였고 초등학교 6년, 중학교 과정 3년을 마친 다음, 소정의 시험을 거쳐 일반 고등학교와 기술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고등학교 졸업자는 비교적 높은 경쟁률의 시험을 거쳐 대학에 진학하게 된다. 초등학교에서 대학과정에 이르기까지 전액 국가 부담으로서 학비는 면제되며 특히 대학에는 희망에 의거 무료로 거주할 수 있는 기숙사가 마련되어 있다.

    다. 교육 장애 요소
    ▶교육 투자의 비효율성, 교육의 비생산성, 기술 과학교육의 현대화 현대식 교수법의 적용을 위한 교사 재교육의 문제 등은 76년의 교육 개혁안의 시행으로 점진적으로 해소될 것이나 교육제도는 그 사회의 산물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소망되는 수준의 개혁은 단 시일 내에 성취동기는 어려울 것이다.

    ★ 사회보장제도 ★
    ▶사회 보험 제도는 사회성의 감독하에 IKA, OGA기구를 대표로 하여 기타 특수
    보험 기관에 의하여 운영되고 있어 IKA는 다른 보험 기금에 혜택을 받지 않는 모든
    피고용인에 대하여 상해, 병환, 노령, 사망 및 실업보험을 취급하며 OGA는 모든 농업 분야에 종사하는 자에 대한 노령, 상해, 의료, 농작물 피해 보험 및 2명 이상의 자녀에 대한
    부양가족 보험을 취급하고 있다. *국민의 90%가 의료보험 혜택을 받고 있다.

    ★ 국민성과 사회 가치관 ★
    가. 국민성
    ▶역사적 전통과 고전 문화유산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고 개인주의 성향과 아울러 명예 가족심(PHILOTIMO)의식이 강하다. 또한 가족에 대한 의무감이 강하기 때문에 비 가족적 권위를 혐오하거나 절대적 지배에 반발한다. 또한 지능지수에 비하여 합리성이나 논리성을 결여하며, 감성을 우선시키며 개인 또는 집단으로서 약속이나 의무 이행 의식이 희박하여 표면적 호의와 표현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회의심을 버리지 않는다.
    ▶내면적인 자부심과 현실과의 차이에서 오는 좌절감은 내성하는 대신, 변명을 하며 개인적으로는 타인에게 집단적으로는 정부나 외국에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 비난하는 경향이 있다. 이기주의적이면서도 이익과 상관되는 상황에서는 권력에 영합하고 기대에 어긋나거나 자존심에 손해 될 때는 향배한다.
    ▶안정의 지속에 반항하며 변화 속에서 혜택을 기대하여 이러한 성향이 개인이나 집단으로서 이성적 판단을 초월한 행동을 초래할 잠재성을 내포하고 있다.
    ▶모든 업무 처리는 "시가 시가"(천천히) 즉, 지극히 느리며 생활관은 현실 만족으로 후세나 장래를 위한 다기보다는 금일의 향락과 자신의 행복을 위해 인생을 즐기며 생활하는 경향으로서 악착과 끈기가 결여되어 있다.

    나. 생활 가치관
    ▶가족은 밀착된 단위로서 가족에 대한 충성심은 다른 모든 것에 우선한다. 이것은 가족 외의 외부에 대한 불신과 무관심 또는 타인에 대한 반대적 도덕적 행위로 나타나며 친척 아닌 자에 대한 사회적 의무를 태만히 한다. 외부의 위협이 현저하거나 광범위한 집단 행위가 자족 가치관의 연장과 합치될 때 비 가족간의 협동이 이루어지며 외부의 위협은 국민적 단합의 동기를 발생시킨다.

    선교적 그리스 현황


    ▶그리스라는 말을 언뜻 들으면 수 많은 신전들이 있고, 여러 가지 재미있는 신화와 철학자, 수학자, 물리학자 등 유명한 인물들이 출생한 국가로 알고 있다. 반면에 기독교적으로 사도 바울이 복음의 씨앗을 뿌려 이제는 그리스인들 스스로 참 기독교국가로 자처할 수 있는 막강한 교회의 힘과 무의미한 교회의 전통숭배와 미신을 믿는 것과 다름없는 신적 대상(성인)을 통해 복을 받을려고 하는, 복음이 변절된 국가이다.
    ▶KJV 영어성경을 가지고 신부들이 성경공부를 하면서 정기와 예식, 그리고 고행에 역점을 두며, 영적인 말씀을 선포하는 것과 거리가 먼 그들의 현실이 되었다. 예를 들어 그들이 말하는 금식은 고기와 기름진 것이 들어 있지 않은 채소류나 빵은 먹어도 되는 것으로 이해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복음전파 이전에 복음전파를 어렵게 하는 인본주의적 문화나 신앙방식, 생활상의 문제 등을 풀어야 하는 과제가 있다.
    ▶회교권과 같이 선교사역을 용납할 수 없다고 하는 측면에서는 비슷한 점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야외 전도를 못하거나 교회를 세울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복음을 전할 때 제약받는 것은 역시 만 18세 미만인 미성년자들에게는 부모의 허락 없이는 복음을 전할 수 없다는 것이며, 교회로서 면모를 갖출 수는 있으나, 관련 기관에 교회로서 등록을 할 수 없다는 면이 있다.
    ▶몇 년 전 한국의 기독교계 신문에 "정교는 어떤 교단인가?"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린 적이 있었다. 내용 중에 '보수교단의 경우, 정교회를 아예 이단으로 취급해 버리는 잘못까지 범하고 있어 적지 않은 파문이 예상된다'고 하면서 '개신교와는 조금 차이가 있지만 이단이 아니다'라고 모 기관이 공식선언을 했다.
    ▶그런데 그리스에서 개신교 교회에 대해 취하는 정교회의 입장은 여기서 살고 사역하는 한국인을 포함한 외국선교사들의 정신적/물질적/영적으로 겪는 고통에서 그 정교의 참 모습을 발견해야 한다고 믿어진다. 논리나 이론이나 생존이 아닌 하나님 나라를 이룩하기 위한 선교사역적인 삶을 살면서이다.
    ▶만약 이단이 아닌 다른 교단이라고 한다면, 그리스 자국인 목사의 개신교 활동이나 개신교 신학교의 불필요하며, 본인을 비롯한 외국인 선교사가 들어 올 하등의 여유가 없다는 것밖에 안되며, 형제 교단이라고 주장한 회원교단은 왜 정교국가에 교단선교사를 서로 파송하여 선교사역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렇다면 그것은 서로 다른 교단의 성도들을 쟁탈전 내지 자기 교단의 교리를 심어주는 행위라고 볼 수밖에 없으며, 결국 주님이 명하신 지상 대 위임령과는 거리가 먼일이 될 수밖에 없다.

    ★ 종교
    가. 개요
    ▶정교회라는 개념은 오늘날 일반적으로 로마 가톨릭 교회로 알려져 있는 서방교회와 대비되는 개념으로서 동방교회를 지칭하는 말이다. 주후 1054년 여러 가지 이유로 일어난 동/서방교회 분열 이후, 콘스탄틴노플(이스탄불)의 세계 총대주교를 정점으로 전통을 이어 내려온 동방교회를 정교회로 혹은 동방정교회로 부른다.
    ▶정교회를 지칭하는 또 다른 말은 희랍정교회인데, 이것은 이 교회의 관할영역이나 영향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정교의 전통이 기원이 희랍교부들에게 있다는 것을 표현하는 말이다.
    ▶주님과 사도들에 의해 가르쳐 내려왔던 신앙을 정교라 부르며, 정교회는 바른 신앙을 이어가는 교회라 부르게 된 것이다. 이들의 신앙은 사도들의 가르침과 희랍교부들에 의해 집대성된 신학적 업적과 신조, 그리고 공의회의 결정에 두고 있다.

    나. 교리 및 교회 조직
    ▶희랍의 전통 교리는 진정한 원 기독교회라고 주장하여 속죄를 믿지 않으며 성자의 유물, 성화, 십자가가 공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 또한 법왕의 절대성을 부정하며 모든 정교회는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대주교의 요청에 의하여 개최되고 이 주교 집단에 의하여 통치된다.
    ▶교회의 의식이나 전통의 개혁 또는 현대화를 반대하며 조각 초상을 우상으로 비난한다.
    ▶현재 정교회는 콘스탄틴노플의 세계 총 대주교청을 비롯하여 알렉산드리아, 안디옥, 예루살렘 등에 4개의 총 대주교청을 두고 있다.
    ▶또 자치권의 행사는 8개의 영역으로서 키프러스, 러시아, 그리스, 유고슬라비아(세르비아), 루마니아, 시나이, 죠지아(구르지아), 불가리아 정교회가 있다. 의식상 선임 주교인 아테네 대주교가 주교회의 의장이 된다. 주교회의 구성원은 수상 승인 사항으로 임명되며 교육상은 교회 문제를 관장하고 그리스 전국에 80개 교구로 분할되어 있다.
    ▶세계적으로 정교회 신자 수는 4억 5천명 정도이며, 세계교회협의회(W.C.C)의 가입국으로 세계교회일치운동에 참여하면서 모든 개신교 교회들과 친선관계를 맺고 있다고 하지만, 현 그리스에서 개신교는 이단이며, 개신교 방송의 전파를 방해하거나, 모든 거리에 개신교는 이단이라는 포스터를 붙여 개신교가 헬라 땅에 선교사역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그리스인들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정교회의 통제를 받는데, 침례를 받아야 이름을 받을 수 있으며, 신부의 서명이 있어야 결혼신고를 할 수 있고, 신부의 서명이 있어야 사망신고를 할 수 있는데, 특히 재미있는 것은 결혼은 3번까지 허용하되 일부일처에 한 한다는 것이다.

    다. 교회의 사회적 기능
    ▶종교는 부활절, 성탄절, 촌락 성자일, 가족 행사, 세례, 결혼과 장례식 등의 의식 그리고 사회 자선사업을 통하여 광범위한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교회는 그 수도주의적 경향으로 인하여 희랍 국민의 정신적 각성에 크게 작용하지 못하고 있으며 사회가 비 진보적 전통에서 점차 서구적 현대사회로 변천함에 따라 독자적 사회 세력으로의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
    ▶희랍 정교는 공동적 사회경제 형태 속에서 평등과 형체 주의를 주장함으로써 결국 비 기독교적 형태의 표현을 추구하게 되었으며, 신학교회의 전신이 올바르게 대중 속에 침투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산주의적 요소와 혼동된 의식을 형성한 잠재성을 내포하고 있다.

    라. 개신교 현황
    ▶아직은 미약하지만, 열심히 방송선교/신학교사역/자국인 교회사역/외국인 선교사들에 의한 전도 및 선교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30여 개의 교회에서 200여 개의 교회에 약 20,000명의 교인으로 부흥이 되고 있다.
    ▶개신교 사역은 19세기 독립전쟁 당시의 후원국이었던 영국(1809), 둑일(1821)에 의해서 선교를 시작했고,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선교사역을 시작했다. 교회등록을 하기 위해서는 대법원의 판결이 있어야 하는데 불가능하다.
    ▶선교사의 입국과 체류는 이민국, 국가정보국의 심의를 거쳐서 지역 정교회의 주교회의 허락이 있어야 가능하므로, 선교사 비자를 가지고 사역을 한다는 사실은 그리스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집시 샘교회 연혁

    날짜

    장소

    비고

    1993. 5. 15

    엘렙시나의 쓰레기하치장(E-1)


    한달 후 집시들이 파괴(교회비품 나눠 가짐)

    1993. 8. 7

    아스쁘로삐르고스의 아노푸사(A-2-1)


    1994. 2. 9 경찰이 파괴

    1994. 3. 21

    아스쁘로삐르고스의 꼬니차(A-2-2)


    1995. 9. 3 경찰이 파괴

    1996. 5. 15

    아스쁘로삐르고스의 네아조이(A-1)


    1998. 8. 27 경찰실수로 파괴(선교부지)

    1998. 11. 1

    아스쁘로삐르고스의 네아조이(A-1)


    1999. 12. 5 폭우로 인해 일부파손 및 수리 후 사용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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