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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세계해동검도연합회 총재 김정성 무예신문 인터뷰 기사 2010년 9월호

Jinyoung Ssangkum Ryu 2010. 8. 31. 13:18
해동검도 오프라인 전도사
세계해동검도연합회 김정성 회장
 
윤영진 기자
 
“해동검도 자체가 한국문화이기 때문에 술기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측면을 함께 전파하고 있다. 술기 부분은 외국인들도 잘 따라오더라. 그런데 정신적인 부분은 상대적으로 더딘 면이 있다. 정신수련 세미나를 개최하게 된 배경이다. 다른 나라의 문화를 배우고 익히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세계해동검도연합회의 김정성(54) 회장. 그는 전 세계 방방곡곡, 발품을 팔며 해동검도 알리기에 여념이 없다. 170cm의 작은 키에 72kg의 다소 왜소한 체구. 하지만 그의 작지만 다부진 어깨에 해동검도의 세계화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동검도의 세계화를 위한 김 회장의 스케줄은 빼곡하다 못해 가히 살인적이다. 한달 평균 10여일은 외국에서 보낸다. 단순히 해외에 알리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기 위함이다. 해동검도의 해외 보급을 위해 기존에 없던 쌍검을 체계화시켜 교본을 만들고, 각종 프로그램 연구에도 박차를 가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다.
원정길에 올라 전 세계 30여개국을 돌며 해동검도 알리기에 주력해 온지 올해로 꼬박 10년. 그를 통해 세계 58개국에 해동검도 지부가 탄생했고, 100여개의 해외 도장과 3만여명의 해동검도 인구가 새로이 생겨났다. 대륙별 대회와 세계대회도 개최되고 있다.
“보급하겠다는 의지만으로는 안 되더라. 지난 2001년 처음 시작할 당시, 미국과 캐나다. 남아프리카 등에서 실패가 잇따랐다. 그런데 몇 번 시행착오를 겪다보니 딱 감이 오더라. 어차피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는 것 아닌가.”

단순히 열심히 가르치면 되겠다는 막연한 생각은 영락없이 실패로 이어졌다. 해동검도 전파의 핵심 포인트는 지도자 선정에 있었다. 여기에 쉽게 다가서고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부문도 상대적으로 취약했다. 하나둘 개선해 나갔다. 해동쌍검의 체계적인 완성은 곧 외국인들에게 전문성으로 어필됐다. 전파 역시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줬다. 먼저 보여주고 따라오도록 유도했다. 인터넷 미디어도 적극 활용했다.

보급에 대한 노하우가 쌓였다고 할지라도, 문물의 전파에는 수많은 난관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당장 언어적인 요소, 현지 국가의 문화적인 이질감, 그리고 이에 앞서 비용적인 측면도 부담이 적지 않을 터.

“가끔은 해동검도를 가지고 돈벌이하려고 한다며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이 있더라ㅣ 말 그래도 돈벌이에 나섰다면 선진국에만 전파해야지 아프리카 등 가난한 나라에 보급할 이유가 있겠는가.”

 김 회장과 해동검도와의 인연은 지난 19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산에서 해동검도를 익힌 뒤, 33개의 도장을 영입해 부산해동검도 협회를 만들었다. 이후 부산해동검도대회를 개최하는 등 초기 해동검도가 부산에서 정착하는 데 일조했다.

그러던 중, 해동검도를 보다 널리 알리기 위해 부산문화회관에서 무대공연으로 올렸지만 예상 외로 반응이 싸늘했다. 제대로 알리지 못한 결과라 판단했다.

눈을 돌리자, 전 세계가 해동검도에 있어서 미개척지였다. 해외에 전파할 경우, 해동검도를 통한 한국문화를 알릴 수 있어 보다 보람된 일이라 판단했다.

물론 주변의 만류도 적지 않았다. 이에 대해 김 회장은 단 한마디로 일축한다. “내게는 한국문화를 보급한다는 자부심이 있다. 내가 익힌 무예를 한국문화와 함께 외국인들에게 전파하고 있다. 이 정도면 행운아가 아닌가.”

김정성 회장, 그의 발품을 타고 해동검도의 세계화는 지금 이 시각에도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무예신문 (http://mooye.net/)   

출처 : 사단법인 세계해동검도연합회
글쓴이 : HAEDO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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